사실은 당혹스럽다. 1.6 엔진의 중형 SUV는 열 여섯 살짜리 대학생 같은 느낌이다. 작은 심장에 큰 차체. 1.6은 준중형인 시대를 오래 살아왔던 입장에선 더 그렇다.

하필이면 이쿼녹스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즉 춘분이나 추분을 말하는 영어다. 균형, 비례 정도의 의미를 떠올릴 수 있을텐데, 1.6과 중형의 조합에서 균형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이쿼녹스, 죽다 살아난 쉐보레가 죽을 힘을 다해 국내에 선보였다는 중형 SUV다. 미국에선 유명한, 쉐보레의 대표적인 중형 SUV로 3세대에 이르고 있다. 한국지엠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쩌면 비장하게 만나야 할 이 차, 하지만 어둡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만나던 친구처럼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 무슨 까닭일까. 강한 임팩트가 없기 때문일까? 중형 SUV에게 무난함은 장점이다. 움직임은 경쾌했다.

잘생겼다. 길이 4,650mm, 너비 1,845mm, 높이 1,690mm의 당당한 크기를 가졌고 생김새도 흠잡을 곳이 없을 만큼 잘 다듬어진 모습이다.

실내는 무척 넓었다. 실내의 넓이를 결정하는 공간, 뒷좌석이 그랬다. 다리를 꼬고도 남는 공간에 몸을 잔뜩 기울여봤지만, 그래도 남는다. 무릎 앞 주먹 세 개의 공간이 그렇게 넓고 넓은 바다 같았다. 게다가 센터터널이 없다. 뒷좌석 가운데에서도 충분한 공간을 누릴 수 있다.

이전 모델 대비 180kg을 줄였다는 이쿼녹스의 공차중량은 1,645kg.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설계하는 스마트 엔지니어링의 결과라고 쉐보레는 설명했다. 고장력, 초고장력 강판 비율을 82%까지 높여 가볍고 견고한 차체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1.6 엔진의 최고출력이 136마력이니, 마력당 무게비는 12.1kg쯤 된다. 12초 전후로 시속 100km를 넘어설 정도의 힘을 기대할 수 있겠다.

지방 빼고 근육을 키운 몸이 경쾌함의 비결이다. 136마력, 32.6kgm의 토크가 끌고 가는 가속감은 가볍고 경쾌했다. 쭉쭉 속도를 올리며 강한 힘을 자랑하는 게 아니다. 딱 좋은 힘으로 차체를 밀어가며 부지런히 속도를 올리는 느낌. 1.6도 훌륭한 중형일 수 있음을 실제로 확인했다. 엔진 배기량과 차체의 무게를 함께 줄여 자칫 모자랄 수 있는 힘을 효과적으로 키웠다. 다운사이징의 승리다.

1.6 디젤 터보 엔진은 1.6톤의 차체를 거뜬히 끌고 달리며 고속주행까지 깔끔하게 해낸다. 파워트레인과 보디의 균형을 제대로 잡고 있다. 이쿼녹스라는 이름을 가질만 했다.

게다가 조용했다. 고속에서 그랬다. 무척 빠르게 달리는데, 실제 속도보다 50~60km 정도는 낮은 수준의 실내 소음이다. 실제 속도와 체감속도의 차이도 그렇다. 높이 1.7m에 육박하는 큼직한 덩치를 가진 SUV의 소음이라고 믿기 힘든 수준이다. 흡차음재를 충분히 쓰고, 노이즈 캔슬레이션 기능을 넣은 결과다. 조용한 고속주행은 인상적이었다.

달리는 중에도 버튼을 누르면 사륜구동 상태로 전환된다. 전륜 기반의 사륜구동 시스템이다. 전륜구동차도 있다. 이쿼녹스의 AWD는 도심형 사륜구동 시스템이다. 오프로드를 달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도심 온로드에서 좀 더 안정적인 주행을 확보하는데 중점을 둔 사륜구동 시스템이라는 것.

락투락 2.7 회전에 R–EPS 타입의 스티어링은 반응이 빠르다. 장애물을 회피하기 위해 급하게 스티어링휠을 조작했는데 반응은 번개처럼 빨랐고 차체는 한차례 휘청인 뒤 곧바로 균형을 되찾았다. 맥퍼슨 스트럿과 멀티링크 타입의 서스펜션이 차체를 제대로 지지한 결과다. 한국타이어 235/50R 19 사이즈를 신었다. 트림에따라 17, 18, 19인치 타이어가 준비되어 있다.

햅틱 시트는 몸에 전달하는 신호다. 차선을 넘을 때, 충돌 위험이 있을 때 등 뭔가 이상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시트가 진동을 통해 몸으로 알려준다. 날카로운 경고음보다 햅틱 시트가 훨씬 지혜로운 상황 대처가 가능하다. 불필요하게 승객들을 놀라게 하지 않고 운전자가 긴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L 레인지에서 수동변속을 하면 변속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운전자가 토글스위치를 조작해 시프트업을 해야 비로소 변속이 이뤄지며 엔진 회전수가 낮아진다. 시키면 딱 시킨 대로만 하는, 조금은 고지식하지만, 충성스러운 변속기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든다.

아주 많은 능동안전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햅틱 시트에 긴급제동, 전방 충돌 경고, 스마트 하이빔, 차선이탈 경고, 차선유지보조, 사각지대 경고, 후측방 경고 시스템 등등이 운전자를 지원해준다. 차선유지보조 시스템은 차로를 정확하게 읽으며 조향에 개입하며 운전자를 돕는다.

이래 봬도 이 차 수입차다. 독일산 엔진을 사용해 멕시코 공장에서 만들어 태평양을 건너온 수입차다. 한국 시장 철수를 고민하던 쉐보레가 그나마 정상화의 길로 나선 건 다행이다. 향후 5년간 15개 모델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쉐보레는 밝히고 있다. 수입차 이쿼녹스가 잘 팔려, 국내 생산하는 차들이 더 많아지는 선순환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춘분은 지났고 다가오는 추분은 석 달 뒤 9월 23일이다. 때마침 추석 연휴 기간이다. 이쿼녹스를 통해 쉐보레가 풍성하게 수확하길 기대해 본다.

연비는 2WD가 13.3km/L, 4WD가 12.9km/L, 판매가격은 2,987만 원부터 4,240만 원까지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아주 많이 적용된 능동안전 시스템에 딱 하나가 아쉽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이 없다. 그냥 정속주행만 가능한 가장 기본형인 크루즈 컨트롤이 적용됐다. 그 많은 장치를 넣으면서 굳이 ACC를 뺀 건 왜일까?
토글스위치로 하는 수동변속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자세가 된다. 손목을 비틀어 변속레버를 잡고 토글을 작동해야 한다. 쉐보레 특유의 변속 시스템이라는 특색은 있지만 불편하다. 수동 변속을 좀 더 편하고 즐겁게 하고 싶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