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기량은 확 줄였고, 변속기 단수는 두 자릿수로 올렸다. 혼다 어코드 얘기다. 다운사이징과는 아무 상관 없을 것 같았던 어코드다. 2.4와 3.5 가솔린 엔진 라인업이었다. 그랬던 혼다 어코드가 1.5와 2.0 가솔린 터보로 엔진을 전격 교체했다. 비교적 여유있고 넉넉했던 엔진 배기량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바짝 쥐어짜는 타이트한 다운사이징 엔진으로 바꿨다. 자연흡기는 갔고, 터보가 왔다. 반가움과 아쉬움이 엇갈린다.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다.

벌써 40년 넘는 세월. 1976년 미국에서 태어나 질풍노도의 시절을 달려온 차다. 벌써 10세대. 그 오랜 세월, 10세대를 이어온 차들은 하나같이 미국 중산층의 사랑을 받으며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혼다가 만들었지만, 일본 차라기보다는 미국차에 가깝다. 아니 미국차다. 생산지가 미국이고, 미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주로 반영했으며, 가장 많이 팔리는 곳 또한 미국이다.

패스트백 디자인은 뒤를 많이 주저앉혔다. 옆에서 보면 4도어 쿠페라 해도 좋을 만큼이다. 그래도 뒷좌석에 앉으면 머리 위로 주먹 하나 공간은 남겨놓았다. LED 램프를 켜켜이 세로로 겹쳐 세워놓은 헤드램프는 제법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다.

넓다. 무척 넓다. 뒷좌석이 그렇다. 앉아보면 실감한다. 너무 넓어 허전할 정도다. 센터터널이 살짝 솟아있기는 하지만 불편하지 않다. 공간이 충분해다. 송풍구와 3단계로 조절되는 열선 시트가 배치됐다.

넓고 낮다. 차세대 플랫폼을 적용해 차가 많이 낮아졌다. 제원표상 높이가 15mm 낮아졌다. 운전석에 드나들 때 시트가 낮음을 실감한다. 엉덩이가 생각보다 많이 바닥에 붙어있다. 고속주행이 즐거운 이유다. 어코드는 매우 빠른 속도에서 앞바퀴굴림 차 답지 않게 노면에 달라붙는 주행감을 선보인다. 흔들림이 덜해 운전자의 불안감이 덜하다. 체감속도가 실제 속도에 훨씬 못 미침은 물론이다. 아, 하나 더 있다. 액티브 컨트롤댐퍼 시스템, 즉 전자제어식 서스펜션이 차의 흔들림을 많이 잡아주는 효과도 컸다. 이유야 어디에 있든 분명한 건, 어코드, 잘 달렸다.

10단 변속기는 주행 속도 구간을 잘게 쪼개준다. 시속 100km를 4단에서 10단까지 커버한다. 수동변속을 택하면 운전자의 선택 폭이 그만큼 넓어진 셈이다. 자동변속에서는 그만큼 효율적으로 엔진과 변속기가 호흡을 맞추게 된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1,500 정도다.

변속레버는 없어졌다. 대신 버튼을 넣었다. 버튼도 큼직하고, R 버튼은 깊게 파놓아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각 버튼의 위치를 손가락 감각으로 알 수 있게 했다.

2.0 엔진에서 터지는 최고출력은 235마력. 1ℓ로 100마력 넘는 힘을 만들어내니, 고성능에 고효율이라 할 수 있다. 공차중량 1,550kg으로 마력당 무게비는 6.6kg이다. 7초 이내에 시속 100km를 넘길 수 있는 체력을 가진 셈이다.

rpm 게이지를 표시하는 계기판 왼쪽은 TFT 모니터, 속도가 표시되는 오른쪽은 아날로그 계기판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어우러진 계기판이다. 센터페시아 상단에는 8인치 모니터가 돌출된 형태로 배치됐다. 안드로이드 방식의 OS를 사용하지만, 아이폰을 USB로 연결하면 애플 카플레이도 사용할 수 있다. 양수겸장, 안드로이드와 애플을 다 받아들인다는 것. 사용자의 스마트폰 방식에 따라 차량 선택이 좌우되는 시대다. 현명한 선택이다.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으로 반자율 운전을 가능케 해주는 ‘혼다센싱’이 적용됐다. 카메라와 레이더를 활용해 주변 사물의 크기, 거리, 속도, 위치 등을 알아내고 차의 움직임을 제어한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은 저속에서도 작동해 편해졌다. 우측 방향지시등을 켜면 오른쪽 뒤편 상황이 내비게이션 모니터에 보인다. 레인 워치 시스템이다. 우측 후방 사각지대를 없애준다.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과 액티브 사운드 컨트롤을 함께 적용했다. 노이즈, 즉 잡음은 걸러내고 엔진 사운드는 스포츠 모드에서 듣기 좋게 만들어 들려준다. 노이즈는 죽이고, 사운드는 살린다고 보면 된다.

메이커가 밝힌 이 차의 공인복합 연비는 10.8km/L다. 판매가격은 4,290만 원이다. 194마력의 힘을 가진 1.5 터보 모델은 연비 13.9km/L, 3,640만 원이다.

수입차지만 국산차와도 경쟁을 피할 수 없는 모델이다. 미국에서는 쏘나타와 한국에서는 그랜저와 경쟁하게 된다.

어코드에서 미국을 본다. 여유 있고 넉넉한 자연흡기 엔진은 그대로 미국인들의 특징이다. 이제 그들도 효율을 따지며 타이트한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을 받아들이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끝까지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다운사이징을 거부했으니 잘 버텼다 해야할까?
양보할 수 없는 건 크기다. 3명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는 여유 있는 뒷좌석 공간이야말로 아메리칸 중형 세단에게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가장 크고 중요한 부분임을 어코드는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선 어떨까. 소비자들과 코드를 맞출 수 있을지, 이제 시장을 지켜볼 때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혼다센싱의 차선유지 조향보조장비(LKAS)는 차로 중앙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때로 좌우를 왔다 갔다 하며 갈지자 행보를 보인다. 운전자가 핸들을 쥐고 있음을 전제로 작동하는 것이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아니다. 운전자는 이를 알고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어서는 안 되겠다.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을 적용했다고 하지만 실내로 파고드는 소리가 제법 들린다. 시승 구간이 대부분 시멘트 도로여서 더 크게 들렸겠지만, 어쨌든 달리는 내내 자잘한 소리가 이어졌고, 고속주행 중에는 신경 쓰일 만큼 소리가 거슬렸다. 소음대책은 조금 더 정성을 기울여야 하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