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역사의 르노가 이제 한국에서 첫발을 뗐다. 과거 80년대 후반, 쌍용그룹이 르노 수입판매에 나섰던 적은 있었지만, 실적은 거의 없었다. QM3를 선보일 때만 해도 르노는 르노삼성 브랜드를 앞세웠다. 좀 더 자신이 생긴 것일까. 이제 클리오를 앞세워 르노가 다시 우리 앞에 섰다. 정면승부다.

B 세그먼트 해치백이다. 크기도 작고, 동력성능도 높지 않아 왠지 허약할 것 같은 이미지다. 하필, 한국 사람들이 썩 내켜 하지 않는 해치백. 통할까?

허약한 이미지는 단단한 디자인으로 단번에 깨버렸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클리오는 단단하고 야무져 보인다. 레슬링 선수 심권호를 닮았다. 작지만 우습게 보이지 않는다. 한눈에 봐도 야물딱지다. 적당한 근육을 닮은 불륨감 있는 몸매, 그리고 살짝 오버 스펙인 비례가 그 근원이다

앞모습은 딱 벌어졌고, 뒷모습은 빵빵한 볼륨감이 살아있다. 캐릭터 라인이 살아있는 옆모습은 휠하우스를 꽉 채운 17인치 타이어가 더해지면서 훌륭한 비례를 완성했다. 큰 타이어 덕분에 오버스펙 분위기까지 난다. 아뭏튼 야무진 디자인으로 허약할 것 같은 소형 해치백의 선입견을 단박에 깨버렸다.

특히 마음에 드는 건, 엉덩이다. 휠하우스 주변을 볼륨감 있게 처리했다. 남들 안 볼 때, 쓰윽, 손이 간다. 녀석은 아마 포르쉐를 닮고 싶었을지 모른다.

보닛을 지지하는 건, 가스식 힌지다. 쇠막대기를 걸치는 게 아니다. 뜻밖의 모습이다. 소형차가 좋은 건 이처럼 사소한 부분에서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이면 폭풍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대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 소형차에겐 축복이다.

뒷좌석이 그렇다. 4m를 겨우 넘는 길이, 휠베이스 2,590mm에 불과한 이 작은 차는 하지만, 무릎 앞으로 주먹 하나가 여유 있게 드나드는 뒷좌석 공간을 갖췄다. 꽉 끼어도, 이해받을 수 있는 차인데, 생각 외의 공간이 뒤통수를 때린다. 머리 위로도 충분한 여유가 있다.

공간 패키징은 아주 영리하다. 일단, 뒷시트 포지션이 높다. 마치 SUV처럼 시트 포지션을 높여 앞좌석보다 훨씬 높게 엉덩이가 위치한다. 극장식 배치다. 덕분에 앉은 자세로 편하고 공간의 여유도 확보했다. 앞 시트의 등받이 뒤를 깊게 파 놓은 점도 주효했다. 제한된 공간을 효과적으로, 영리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런 영리함도 손바닥 절반을 넘는 센터터널을 넘지는 못했다. 센터터널이 없었다면 완벽했을 뒷공간이다.

스티어링 휠은 2.6회전 한다. 차 크기에 맞춰 꽉 조이는 조향비다. 거침없는 조작에 차체도 기꺼이 따라온다. 좌우로 비비며 코너를 돌아 달리는 와인딩로드에서 리듬을 타며 왈츠를 추듯 여유있게, 힘있게 움직였다.

스톱 앤 고 시스템은 그 정확성과 함께 부드러운 재시동 반응이 인상적이다. 소형차에 이렇게 앞선 시스템을 쓸 필요가 있을까. 조금 거칠어도 좋을 텐데, 더없이 부드럽게 재시동이 이뤄진다.

달랑 90마력이다. 아무리 다운사이징 시대라고는 하지만, 90마력은 조금 허무하다. 이 힘으로, 제대로 달릴 수 있을까?

걱정이 컸다. 가속페달을 밟았다. 정지 후 초반 가속은 답답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탄력을 받으면 가속이 좀 더 경쾌해지고, 고속구간으로 꾸준히 밀고 올라선다. 시간이 지나며 탄력을 받은 클리오는 감옥을 벗어난 빠삐용처럼, 잡히길 거부하며 훨훨 내뺀다.

90마력의 부족함을 22.4kgm의 토크가 잘 커버한다. 최대토크가 1,750~2,000rpm 구간에서 나온다. 일상 주행영역을 최대토크가 커버하는 셈이다.

언덕길, 거구의 사내 둘을 태우고 에어컨 빵빵하게 켜고 힘차게 달렸다. 쭉 뻗은 고속도로에서는 거침없는 고속주행을 이어가며 감탄사를 부른다.

작지만 잘 달렸다. 속도를 속일 만큼 치밀하진 않다. 속도만큼 몸도 느낀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실제 속도 이하의 체감속도를 이 차에서 기대하는 건 무리다. 작은 체구의 해치백 보디는 고속주행에서 불안한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다.

고속에서 살짝 흔들리는 느낌은 적당한 긴장을 부른다. 100km/h 전후 속도에서는 딱 좋은 주행감을 맛본다. 타이어는 노면과 밀당을 이어가며 차체를 지지하고 엔진은 ‘#’이 붙은 악보처럼 반음 올려 소리를 낸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2000을 맴돈다. 조금 높다. 소리도 따라서 반음 높아진다. 의외다. 차의 크기와 1.5 리터 디젤엔진 배기량에 6단 DCT라는 조건을 봤을 때 엔진 회전수를 조금 더 낮출 수 있을텐데. 왜 그럴까.

속도를 더 낮췄다. 60km/h 전후 속도에서도 그리 조용한 편은 아니다. 자잘한 노면 잡소리가 파고든다. 하지만 신경을 거스를 정도는 아니다. 달리는 맛이려니 소리와 함께 달리면 된다.
잡소리가 거슬릴 때 비장의 카드가 있다. 보스 마크가 선명한 오디오. 짱짱하고 질감 있는 소리가 스피커로 흐른다. 적당히 볼륨을 올리면 잡소리는 덮어버린다. 에디트 피아프의 진한 샹송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을 클리오에서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해치백의 특징은 그대로 드러난다. 고속주행에서 흔들리는 차체, 뒤에서 몰아치는 바람 소리 등이다. 보닛을 타고 지븡으로 넘어간 바람이 뒷부분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세단이라면 트렁크 리드를 타고 가며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텐데, 해치백은 꽁지 빠진 닭, 트렁크가 없다. 지붕을 타고 넘은 공기가 흔들리며 와류가 생기는 이유다. 차가 흔들리고 바람 소리도 커진다. 해치백의 숙명이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같은 특성을 만나려면, 속도를 매우 빠르게 올려야 한다. 일상주행에서는 거의 만날 수 없는 특성이다. 이런 특성을 만난다면, 차를 탓할 게 아니라 운전 스타일을 반성해야 한다.

결론, 꽉 차는 B 세그먼트 프렌치 해치백이다. 소형차급으로서, 모든 부분에서 기대 이상의 성능을 보여준다. 경쟁차라고 해야 역시 프랑스 차인 푸조 208 정도다. 국산 소형차로 현대차 엑센트가 있는데, 직접 비교하기는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다.

이래 봬도 클리오는 수입차다. 르노 터키 공장에서 만들어 바다를 건너왔다. 가격이 조금 비싸다고 느낄 수 있겠으나, 수입차인 만큼 수긍할만한 수준이다. 경쟁 수입차보다 조금 더 저렴한 가격이니 비싸다 탓할 정도는 아니다. 판매가격은 1,990만 원(젠 트림)부터다. 인텐스 트림을 풀옵션으로 하면 2,400 만 원 정도가 된다.

수입차지만 국산차 메이커인 르노삼성차의 판매 정비네트워크를 이용한다. 큰 매력 포인트다. 가장 영리하게 수입차를 누릴 수 있는 카드다.

연비는 17.7km/L다. 동해안 국도와 고속도로 60여km 구간을 얌전하게 달린 이들은 19km/L가 넘는 연비를 보이기도 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크루즈컨트롤 버튼은 여기저기 산재해있다. 변속레버 아래에 있는 버튼을 누른 뒤 스티어링휠 왼편의 버튼을 눌러 활성화 시킨다. 핸들 오른쪽에는 다시 임시로 비활성화할 수 있는 버튼이 따로 있다. 관련 버튼이 세 군데에 제각각 떨어져 있는 것. 사용하기가 불편하다. 한군데로 몰아주면 좋겠는데, 모든 르노차가 그러니, 그러려니 하고 타야 한다.
시트는 깊숙하게 자리한 원형 레버를 부지런히 돌려야 한다. 시트를 완전히 누이려면 한나절은 걸릴 듯하다. 불편하다. 레버 한 번에 시트를 딱 누이는 데 익숙한 사람에겐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방식이다. 데이트용으론 최악의 시트. 물론 그래서 가장 안전한 시트일 수도 있겠다. 딸 가진 아빠라면 이런 시트가 반가울 수 있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