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의 라인업이 차근차근 넓어지고 있다. 이번엔 5008이 추가됐다. 겨울을 앞둔 지난 11월, 한국 시장에 투입됐다. SUV에겐 겨울도 참 좋은 계절이다. 푸조가 선보인 최신형 SUV 5008을 만났다. 시승모델은 기본형인 알뤼르.

풀 LED 램프를 적용한 눈빛은 영민하게 빛을 낸다. 뒷모습에서는 리어램프에 액센트를 줬다. 사자 발톱이 할퀸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디자인이다. 스토리를 담은 디자인은 여간해서는 잊혀지지 않는다. 사자의 발톱. 흘려들었지만, 귀에 남는다.

푸조 라인업에 이렇게 큰 녀석이 있었나? 과거 806 정도가 떠오르기는 하지만, 근래에 이만한 차는 없었다. 당당한 SUV 면모가 시야를 꽉 채운다. 길이 4,640mm를 7인승으로 구성했다.

무리한 구성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2열 공간은 충분했고, 3열은 비상 좌석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3열 시트를 접고 펴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끈을 잡아당긴 뒤 시트를 잡아주면 된다. 작동하기 어려우면 푸조가 아니다. 직관적인 조작. 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을 만져보면 조작방법을 금방 알게 된다.

2열 시트 3개는 제각각 분리됐다. 덕분에 다양한 공간 구성이 가능하다. 트렁크 공간은 236ℓ에서 최대 2,150ℓ까지 확장된다. 조수석을 접으면 3.2m 길이의 아주 긴 물건도 실을 수 있다.

운전석에는 다른 어떤 차들과도 다른 푸조만의 개성이 있다. i 콕핏 디자인이다. 계기판이 스티어링휠 위로 보인다. 핸들의 안쪽 공간으로 보이는 계기판이 핸들을 벗어나 더 위로 배치됐다. 헤드업 디스플레이 효과를 낸다. 계기판에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함께 배치하는 것보다 둘을 합쳐 최적의 공간에 배치한 것. 이를 위해 스티어링휠을 작게 하고 위아래를 직선으로 만들었다. 핸들을 돌리고 있으면 컴퓨터 레이싱게임을 하는 기분이 든다. 느낌이 매우 비슷하다. 재미있다.

파워트레인은 겸손하다. 1.6 디젤엔진에 6단 자동변속기 조합으로 최고출력 120마력이다. 마력당 무게비가 13.6kg으로 무거운 편. 숫자상으로는 허약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숫자는 숫자일 뿐. 괜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걱정은 사라진다.

시속 100km까지의 중저속 구간에서는 무난하게 움직인다. 앞서 달리지는 못해도 무리에 섞여 달리는 정도의 반응이다. 120마력보다는 30.6kgm의 토크가 큰 역할을 한다. 이 수준을 넘어 속도를 더 끌어올려도 5008은 거부하지 않는다. 기꺼이 속도를 끌어올리는데, 120마력의 힘이라고는 믿기 힘든 반응을 보인다. 시간이 조금은 더 필요했지만 아주 빠른 속도까지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놀랍다.

물론, 이 차가 120마력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운전석에 앉으면,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 느낌은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거부하며 속도는 꾸준히 올라간다.
편하다. 일단 실내가 넓고 앉은 자세가 편해 멀리 움직일 때도 피곤함이 덜하다. 중저속에는 안정감이 돋보인다. 노면의 충격과 굴곡을 적절하게 걸러준다. 고속에서도 흔들림이 덜하다. 그래서 운전자의 불안감은 그닥 크지 않다.

5008은 푸조가 자랑하는 EMP2 플랫폼을 사용했다. 신형 308에서부터 적용하기 시작한 이 모듈러 플랫폼은 이제 푸조의 주요 모델을 관통하는 플랫폼이다. 가장 큰 특징은 가볍다는 것. 5008 역시 공차중량 1,640kg으로 중형 세단 수준의 몸무게다. 7인승 SUV라고는 믿기힘든 몸무게다.

SUV지만 사륜구동 시스템은 생략했다. 대신 어드밴스트 그립컨트롤을 적용했다. 어떤 길에서도 타이어의 그립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구동력을 조절해주는 것이다. 눈길, 평지(Normal), 진흙, 모래에 ESP 오프 모드까지 다섯 가지 주행 모드를 택할 수 있다. 노면 상황에 맞춰 주행모드를 택하고, 정 안될 때에는 ESP를 끄고 움직이라는 얘기다.

사륜구동을 버리고 그립컨트롤을 적용한 건 영리한 선택이다. 큰 비용들이지 않고 사륜구동에서 기대할 수 있는 효과의 상당 부분을 그립컨트롤로 해결할 수 있어서다. 어지간한 오프로드를 그립컨트롤만으로 헤쳐나갈 수 있다.

힐 어시스트 디센트 컨트롤은 내리막길에서 안정적으로 차를 다룰 수 있게 해준다. 가속페달이나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낮은 속도로 차가 움직인다.

5008은 유럽 신차 안전성 평가인 유로 NCAP 충돌 테스트에서 최고 안전 등급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이를 인정받았다. 보험개발원의 평가를 거쳐 5등급으로 판정받은 것. 이에 따라 보험료가 최대 20%까지 내려간다. 안전은 곧 돈이다.

공인복합 연비는 12.7km/L다. 1.6블루 HDi엔진에 6단 자동변속기의 궁합이 빚어낸 연비다.

푸조 5008 SUV 알뤼르는 4,290만 원, GT 라인은 4,650만 원이다. 수입차 시장의 7인승 SUV로선 참 착한 가격이다. 국산 중형 SUV와 비교해도 경쟁력 있는 가격이다. 푸조가 아니라면 이 가격에 이런 차 만나기 힘들다. 한불모터스가 가격 참 매력적으로 결정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내비게이션이 없다. 그럴 수 있다. 착한 가격을 내세운 기본형 모델이라면 내비게이션이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센터페시아에는 8인치 모니터가 자리 잡았다. 내비게이션이 없는 모니터는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인포테인먼트 터치 스크린의 기능을 계기판으로 몰아넣고 센터페시아 모니터는 없어도 좋겠다. 모니터 빼고 가격을 더 내려달라고 하면 무리일까?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