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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파트너는 크루즈. 쉐보레의 최신작이다.

슬림해졌다. 헤드램프를 비롯한 앞모습이 그렇다. 다이어트도 제대로 했다. 몸무게가 200kg 가량 줄었다. 성인 남자 3명의 몸무게를 덜어낸 것. 뒤에는 스포일러도 달았다. 무려 10가지 보디 컬러가 있다. 화이트와 블랙 사이의 무채색 6종류 외에 블루 레드 브라운 등 유채색도 4종류가 있다. 한결 컬러풀해졌다.

신형을 보고 나니 구형 모델은 뭉툭한 덩어리 느낌이다. 구형을 처음 볼 땐 그게 또 멋있어 보이더니. 인간의 간사함. 어쩔 수 없다.

신상명세를 보자. 몇 개의 숫자를 보면 된다. 1.4 터보, 153마력, 24.5kgm, 13.5km/L 등이다. 74.6%도 있다. 고장력과 초고장력 강판 비율이다. 두 종류의 강판을 하나로 묶어 비율을 말하고 있다. 초고장력 강판으로만 보면 그리 유리하지 않을 탓이겠거니 짐작해본다.

시승구간의 몇 개 지점을 중심으로 풀어본다. 쉐보레 올 뉴 크루즈 LTZ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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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남동, 한남대교
교통량은 많았지만 차들이 물 흐르듯 흐르는 도심이다. 편안하게 흐름에 맞춰 움직인다. 한남고가에 오르는 길엔 끼어드는 차들이 많다. 앞차와 거리를 바짝 붙이자 전방충돌 경고 시스템이 뜬다. 여유를 가지라는 충고. 끼어드는 차에 공간을 내어주고 한 호흡 쉬고 간다.

한남대교에 올라서니 앞 공간이 잠깐 열린다. 흐름에 맞춰 속도를 올리기 위해 가속페달을 깊게 눌러 밟았다. 잠깐 사이에 흐름을 헤치며 앞으로 나선다. 어여 가라고 시트가 몸을 민다. “이크” 소리가 튀어나온다. 가속페달을 누르던 발의 힘을 뺀 건 아주 잠깐 사이였다. 배기량 1.4는 포커페이스였다. 이런 귀여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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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대로
갑갑한 흐름을 이어가던 도로가 어느 순간 앞이 탁 트였다. 전력질주에 나설 순간. 최대한 힘을 모아 죽어라 달리기를 시도했다. 킥다운 버튼을 오른 발로 꾹 누르자 rpm이 춤을 추며 레드존을 넘나든다. 가속이 빠르다. 24.5kgm 토크의 실체다. 힘이 셌다. 우습게 봤는데, 아니었다.
3세대 6단변속기가 아무런 이질감 없이 그 힘을 조율해 낸다. 변속은 부드럽지만 힘을 떨어뜨리지 않고 강하게 밀고 나간다. 보령공장에서 만든다고 ‘보령미션’이라며 조롱받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3세대에 이른 지금 더 이상 조롱하긴 힘들겠다. 잘 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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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고속도로
직진 가속에 딱 좋은 길. 곧게 뻗은 길을 있는 힘껏 내달렸다. 153마력이 실체는 놀라웠다. 극한의 속도까지 치고 올라가는 기세가 당당하다. 무겁게 가라앉았던 찌뿌둥했던 몸에 긴장감이 살아나며 엔돌핀이 솟구친다.

엔진 사운드도 특색 있다. 우렁찬 소리는 아니다. 그래도 듣기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고속으로 올라갈수록 바람소리에 파묻히는 엔진 소리가 아쉽다. 좀 더 듣고 싶은데, 바람이 자꾸 덮는다.
모든 힘을 끌어 모아 길 위를 내달린다. 작은 키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골잡이 리오넬 메시를 닮았다. 힘들어하지 않는다. 최고점을 향해 지치지 않고 팡팡 터지는 힘이 경쾌하다. 속도는 높아지는데 가속페달을 놓아주고 싶지 않다. 환상적인 직진가속을 보이는 힘의 근원이 정말 1.4리터 엔진인건가. 감탄하기 전에 사과가 필요했다. 미안하다, 얕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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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보조 장치는 차선을 읽으며 달린다. 핸들에서 손을 떼도 차선을 유지한다. 그런데 휘청거린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술 취한 걸음이다. 차선을 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왼쪽 차선과 만나면 우측으로 향하고, 다시 우측 차선을 만나면 좌측으로 움직인다. 교통경찰이라도 뒤에서 봤다면 냉큼 쫓아와 차를 세웠을 거라 생각해본다. ‘어시스트’ 혹은 ‘보조’ 라는 단어가 붙은 시스템은 맹신해선 안 된다. 보조장치일 뿐 이어서다. 책임은 운전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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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산 와인딩 로드
오늘의 승부처다. 와인딩이 이어지며 고개를 넘는 길. 드라이버와 차가 한 몸으로 도로를 이겨야하는 곳. 다행히 도로는 얼지 않아 마른 상태이긴 했지만 기온은 낮았다. 먼 길을 달려오며 타이어는 적당히 데워진 상태.
먼저 업힐이다. 수동 2단을 택해 스타트. rpm은 3,000을 가뿐히 넘어 힘을 쓴다. 속도를 올린 뒤 3단 시프트업. 225/40R18 사이즈의 타이어는 미쉐린이 공급했다. 정확히 3회전하는 스티어링휠은 R-EPS 방식. 심한 코너를 공략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조합이다. 코너 라인을 따라 핸들을 돌리면, 타이어는 정확히 명령을 받은 만큼 움직인다. 약한 언더스티어링이 느껴지지만 조금 더 핸들을 돌리고, 때로 가속페달을 풀어주며 달렸다. 눈과 손, 발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고갯길을 타고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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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넘어선 뒤 만난 다운힐. 조금 더 조심해야 했다. 산에는 눈이 묻어있었고, 길도 군데군데 젖어있다. 얼어붙은 곳도 있을 터. 무작정 달리면 안 된다. 확실하게 감속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 브레이크도 조심해야 하는 길, 변속기는 2단으로 고정이다. 속도는 낮추고 엔진 회전수는 올려 가속과 감속을 액셀러레이터로만 해결했다. 타이어는 그립을 잃지 않고 끈덕지게 노면을 물고 늘어졌다. 요철이 이어지는 코너에서 서스펜션은 지그시 눌러주는 게 아니라 받아치듯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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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단도직입
그래서 얼만데. 쉐보레로선 가장 아픈 질문이다. 시작 가격 1,890만원은 아반떼보다 무려 300만 원 이상 비싸다. 시승차인 LTZ 디럭스 모델은 2,478만원. 장작된 옵션들을 합하면 300만 원 이상 더 줘야한다.
잘 만든 차를 헐값에 팔지 않겠다는 걸까. 강한 의지는 때로 아집일 수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라면 고가전략이 좋은 카드일 때가 있다. 쉐보레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아니다. 대중 브랜드에선 아무리 좋아도 가격이 비싸면 소비자에겐 좋은 차가 아닌 비싼 차일 뿐이다. 많이 팔려면 가격을 내려야 한다. 비싸게 받으려면 판매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쉐보레는 후자를 택한 듯하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