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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타로사라는 반가운 이름이 전하는 뉴스는 씁쓸하다. 이건 아닌데.

테스타로사는 페라리가 1984년부터 1991년까지 만들었던 12기통 미드십 스포츠카의 이름이다.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했다. 1991-1994년엔 512TR이 있었다. TR, 역시 테스타로사다. 1994-1996년엔 F512 M으로 테스타로사의 명맥은 이어진다.

거슬러 올라가면,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반, 르망 24시, 월드스포츠카 챔피언십에서 명성을 날렸던 페라리 테스타로사가 있었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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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라리의 말
공교롭게도 테스타로사, 페라리의 상징은 말이다. 앞 다리를 들고 힘차게 도약하는 말은 독일 전투기에 달려있던 그림에서 기원한다. 1차 대전 당시, 슈투트가르트 출신의 독일 조종사는 말 그림을 자신의 전투기에 그려 넣었다. 슈투트가르트는 예로부터 기병대를 위한 말을 키우고 관리했던 지역. 자신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한 셈이다. 하지만 그 전투기는 이탈리아 전투기와의 공중전에서 격추된다. 적기를 격추시킨 이탈리아 조종사 프란체스코 바라카는 적기에 그려져 있던 말을 자신의 전투기에 다시 그려 넣었다. 하지만 그 역시 전사하고 만다. 프란체스코 바카라의 어머니가 페라리를 만든 엔초 페라리에게 그 문양을 사용할 것을 권했고, 엔초가 이를 받아들여 페라리의 문양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스토리다.

2. 포르쉐의 말
재미있는 건, 포르쉐 엠블럼에도 페라리와 비슷한 말이 있다는 사실. 포르쉐의 본거지는 앞서 설명했든 ‘말’의 본고장. 슈투트가르트 지역의 과거 왕조인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문양과 지역의 명물인 말을 더해 포르쉐의 엠블럼이 만들어졌다. 포르쉐와 페라리의 엠블럼에 들어간 말은 결국 같은 기원을 가진 셈이다.

포르쉐의 엠블럼은 포르쉐를 미국에 수입해 팔던 맥스 호프만이 처음 제안했다.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냅킨 위에 아이디어 스케치를 직접 그리며 제안했다. 브랜드의 상징이 있어야 판매가 더 잘될 것이란 설득에 포르쉐 박사가 이를 받아들여 엠블럼을 만들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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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머스탱
머스탱도 있다. 포르쉐와 페라리가 유러피언 스포츠카의 대명사라고 한다면, 미국엔 머스탱이 있다. 1964년에 출시한 아메리칸 머슬카의 대명사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차다. 차 이름 자체가 야생마를 뜻하는 머스탱이었던 만큼, 차 앞에 힘차게 달리는 말의 모습이 앰블렘으로 자리하고 있다. 70년 경부고속도로가 처음 개통하던 날, 영화배우 신성일이 빨간색 머스탱을 타고 박정희 대통령이 타고 있던 차를 추월해 달렸다던 일화도 있다. 박정희는 신성일을 나무라지 않았다고 얘기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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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대전때 미 육군 항공대에서 운용했던 전투기 이름도 P-51 머스탱이었으니, 말과 전투기, 자동차 사이에는 이처럼 운명적인 인연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4. 유신 혹은 새마을이 될 뻔한 포니
한국에도 말과 관련된 차가 있었다. 조랑말을 뜻하는 이름, 포니다. 한국 최초의 독자개발 모델로 이탈디자인의 쥬지아로가 디자인했다.

73년 6월 시작차 1호를 개발한 현대차는 이 차의 이름을 짓기 위해 7월 18일부터 8월 25일까지 전 국민을 상대로 공모에 나선다. 아리랑, 유신, 무궁화, 새마을 등이 가장 많았다. 어쩌면 한국 최초의 독자개발 모델의 이름이 ‘유신’이나 ‘새마을’이 될 뻔한 것이다. 하지만 해외 수출을 생각해 이 차를 만든 현대차는 좀 더 세련되고 해외 소비자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이름을 고민했고, 결국 포니로 결정했다.

문제는 포니라는 상표를 미국 포드가 갖고 있었다는 것. 포드는 한국 특허청을 포함해 해외 주요 시장에도 이를 등록해 두고 있었다. 현대차는 포드와 협상에 나서 상표를 사들였고, 국내는 물론 해외 주요국에도 현대 상표로 등록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조랑말 그림을 뒤에 붙인 자랑스러운 포니가 해외로 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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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테스타로사다. 이번엔 카페다. 서울 유명한 거리에 자리했던, 지금은 문을 닫았다는 이 카페에서 말 타는 딸을 둔, 무당으로 의심받는 중년 여인과, 호스트바 출신이라는 설이 무성한 잘생긴 남자와, 부동산 개발업자와 등등 그저 그런 이들이 모여 나랏일을 결정했다는 곳중의 하나로 카페 ‘테스타로사’가 구설에 올랐다.

상상을 해 본다. 가짜 말고 진짜 장관이 길거리 카페에 앉아 사람들과 국정을 논하는 모습은 참 아름답지 않을까. 지나던 사람,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도 가끔은 얘기에 끼어들고, 논쟁하고 설득하는 모습. 거기가면, 힘깨나 쓰는 사람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자리. 지금은 문을 닫았다니 아쉬울 뿐이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테스타로사를 다시 열겠다. 오늘 같은 토요일 아침엔 거기에서 느긋하게 브런치를 즐길 셈이다. 물론 그럴 일 없지만, 혹시 아나. 말도 안되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상상 그 이상의 나라’라면, 그럴 일, 꼭 없으란 법은 없지않을까.

이제 촛불을 켜야할 시간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