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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에 보기 좋게 속았다. 차범근 감독의 G바겐 얘기다.

벤츠코리아는 벤츠의 추억과 감동을 키워드로 한 ‘추억도 AS가 될까요’라는 이벤트를 열고 차범근 전 감독의 G바겐을 복원해 전달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차 감독에게 전달된 차는 ‘차범근 감독의 G바겐’이 아니었다. 그 차와 동일 모델이었을 뿐이다. 벤츠코리아가 복원한 차량은 차범근이 1989년 독일생활을 마치면서 국내에 들여와 동고동락한 차량이 아니라는 의미다. 감동이 사라진 자리엔 짙은 배신감이 스며든다.

지난 4월15일 메르세데스-벤츠의 ‘2016 서비스 익스피리언스데이’가 죽전 서비스센터에서 개최됐다. 당시 꽤 많은 기자들과 벤츠코리아 드미트리스 실라키스 대표, 서비스와 부품담당 김지섭 부사장을 비롯한 많은 관계자가 참여했다. 행사는 약 1시간 정도 진행됐다.

벤츠코리아가 만든 영상 속 차범근의 내레이션을 들어보자. “함께 달리면 수비수를 제치고 골문으로 돌진하는 기분이었어. ……. 차가 아니라 친구였지. 친구…….” 다음에는 영상에 아래와 같은 문구가 표시된다. “30년의 세월이 흘러 그들에게도 이별이 찾아왔다”
내레이션-“메르세데스 벤츠가 그의 30년 추억을 찾아 복원합니다.”
내레이션(차범근)”한 30년 같이 늙어간거야. 꼭 한번 같이 달려봤으면 좋겠네요. 그때처럼”

영상을 보고 난 후 김지섭 부사장은 “한국 축구계의 전설, 차범근 전 국가대표 감독님을 선정하여 감독님께서 분데스리가 시절에 몰던 G바겐 모델을 성공적으로 복원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차범근은 분데스리가 시절에는 G바겐 차량을 만나지 못했다고 밝혔다. 벤츠코리아는 G바겐을 분데스리가 시절에 타고 다니던 차량으로 우기고 싶었나 보다.

차범근 감독은 복원된 G바겐을 둘러보고 문도 열어보면서 너무도 감격한 모습을 보여줬다. 추억을 복원하게 되어서 기쁘냐는 질문에 차범근은 “그럼요. 지금 이 차를 보면서. 한 번 생각해보세요. 30년 전의 이 차하고 30년이 지난 똑같은 이 차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이거 감격 아닌가요? 저는 독일의 그것을 다시 되돌려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너무도 감격스럽고 정말 이것이 우리 가족의 ……. G바겐은 저한테 있어서는 우리 막내에요”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서 그는 “충분히 저는 30년 인생 차붐 신화를 복원해서 받았습니다. 저한테는 감격스럽고 또 독일과 한국을 연결시켜 줄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은퇴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이 차라고 생각했었고 정말 이차를 가지고 독일축구를 많이 한국에 접목시켰고…….그런 상직적인 의미를 다른 쪽에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말하며 받은 자동차 키를 실라키스 대표에게 돌려주었다. 모두가 감동한 순간이었고 자연스럽게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차 감독이 직접 타던 G바겐 소유자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반전되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실제 차범근이 타던 G바겐 소유주라는 사람이 등장하면서다. 동일한 모델인 다른 차를 가져와서 27년 동안 동고동락한 차로 변신 시킨 셈이다. 30여년을 함께한 추억이 웃음꺼리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G바겐을 이미 처분했음에도 “30년을 함께 늙어왔다”고 말하는 것 역시 맞지 않는다.

메르세데스벤츠의 홍보대행사 관련자는 이와 관련한 보도자료에 “동일 모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고 해명했다. 10쪽짜리 자료에 암호처럼 박아 넣은 ‘동일 모델’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미디어에서 이를 간과하고 차 감독이 직접 타던 차로 기사를 내보냈고 현장의 분위기 역시 그랬다. 그 많은 기사들이 출고됐지만 벤츠측은 설명이나 해명을 통해 이를 바로잡지도 않았다. 오보를 의도적으로 방치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많은 관련 기사들이 이를 증명한다.

벤츠는 속인 적 없다고 하지만, 취재 기자는 속았다고 생각한다. 암호같은 단어 하나를 간과해버린 기자의 잘못이 가장 크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이 부분을 명확하게 밝혔어야 했다.

관련 영상을 다시 본다. 모든 사실을 알고 난 후에 보는 영상은 전혀 감동적이지 않다. 드러난 사실과 다른 말이 무엇인지를 찾는, 속아 넘어간 자의 떨떠름한 기분만 남을 뿐이다.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게 벤츠의 모토다. 하지만 이번 일은 최악이었다. 벤츠의 명성에 흠집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추억과 감동이 있을리 없다.

안타까운 건 벤츠와 함께 차범근 감독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 몇 안 되는 ‘국민 영웅’의 자리에 오른 차 감독이 벤츠의 무리한 욕심에 우습게 되고 말았다.

오토다이어리 역시 결과적으로 오보를 냈다. 사실 확인을 한 뒤 관련 기사를 내렸다. 독자들께 정중히 사과드린다.

김기형 tnkfree@autodiary.kr